[2016년] 서울문화투데이 이근수의 무용평론 <시간의 공간>과 <모래•그림>, 늘휘무용단의 20년 - 이근수
[2016년] 늘휘무용단 창단 20주년 기념공연 춤웹진 인터뷰 내용 中 발췌

서울문화투데이 이근수의 무용평론 <시간의 공간>과 <모래•그림>, 늘휘무용단의 20년

첫날공연은 <상상>(2006), <하늘의 미소>(20011), <미궁>(2013) 세 작품을 각각 20분 정도로 응축시켜놓은 우수레퍼토리공연이었고 둘째 날은 늘휘 20년의 무용철학을 70분의 시간에 담아놓은 신작 <모래•그림>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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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그림>은 세 개의 장면으로 구성된다. 첫 장면에서 뒤 벽면에 영상으로 떠 있는 만다라그림이 보인다. 다섯 명 흰 옷의 여인들이 등장해서 느리게 움직인다. 정지와 느림은 움직임의 정수다. 이러한 움직임을 반복하며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그들은 각각이 하나의 점이기도 하고 점들이 모여 대열을 형성하고 둥그런 원의 형상을 만들기도 한다. 점들이 연결되면 선이다.

조명이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세 명의 여인들이 삼각추 모양으로 된 쇳대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쇳대는 피라미드모양으로 고정되어 있다가 세 발을 자유롭게 움직여가며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신을 거듭한다. 음악의 톤이 높아지고 발 빨라진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무대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폭포수처럼 무대 뒷벽에서 모래가 쏟아져 내린다. 바닥에 누운 여인들이 온 몸으로 모래를 흩뿌리며 만다라를 완성해간다. 꿈틀거리는 몸으로 그려지는 그림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단체를 이루고 땀과 땀으로 이뤄낸 무용단이 살아있는 현재의 징표이며 지난 20년간 그들이 추구해온 춤의 흔적일 것이다.

붉은색과 청색, 황색, 녹색 옷으로 갈아입은 여인들이 무대공간을 휘돌며 화려한 춤사위를 구사한다. 열정과 기원과 헌신을 담은 그들의 춤은 고급스럽고 정갈하다. 10명의 여인들로 무대가 넘쳐날 듯하지만 무대엔 오히려 여백이 있다. 절제된 색감의 화려함, 느림 속에 정교함을 담은 무용수들의 숙련된 춤사위, 자연과 하나 된 담백한 주제로 특징지을 수 있는 늘휘무용단의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 평가해주고 싶다.

아마도 우리나라 무용단 중 늘휘무용단만치 자신의 춤 캐릭터를 독특하게 구축하고 이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팀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춤에선 이른 새벽 돌 틈에서 솟아나는 정결한 석간수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깊은 산 속 빼곡히 서 있는 대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달라이라마는 “진정한 종교란 친절한 마음일 뿐이다.(The true religion is kind heart.)”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진정한 예술 역시 진정한 종교와 같이 아프고 상처받은 마음을 쓰다듬듯 위로해주는 친절한 마음이 아닐까. 그러한 위로를 통해서 20년을 늘휘와 함께 춤춰온 춤꾼들 자신도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을 믿는다.

<모래• 그림>이란 제목이 품은 상징성에서 20년간 늘휘가 쌓아온 모든 공적을 한 줌의 모래처럼 흔적도 없이 털어버릴 수 있는 안무가의 선가적인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늘휘무용단이 앞으로의 또 다른 20년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이러한 믿음에 기인할 것이다.

[이근수]

늘휘무용단 창단 20주년 기념공연 춤웹진 인터뷰 내용 中 발췌

-해외에서도 공연을 가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디서 어떤 작품들을 공연했는지요?
1999년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와 필라델피아 무용연맹의 초청공연 <색동너머>, 2002년 파리 가나보브르 초청공연 <샘>, 2005년 뉴욕대학교 초청공연, 2007년 동아일보 주최, 「이준열사 순국 100주기 기념」네덜란드 헤이그 초청공연<송시> 등을 세계무대에 선보인 바 있다. 특히 2009년에는 <상.상> 작품으로 뉴욕 아시아 소싸이어티로부터 한국무용단체로는 유일하게 두 번째로 초청을 받아 의미가 깊었다. 또한 2012년에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의 초청공연 <상.상>을 선보여 한국춤의 정수를 선보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한국춤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음으로써 자부심과 동시에 더욱 책임감이 느껴진다.

-이번 창단 20주년 공연도 엘지아트센터라는 대극장에서 이틀동안 다른 레파토리를 공연하는 어려운 도전을 했습니다. 이번 공연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요?
2016년 올해는 늘휘무용단이 창단된 해로부터 정확히 20년이 된 해이다. 그동안 한국의 정통춤과 창작춤 그리고 늘휘무용단의 신진작가 양성을 위한 기획 공연 등 수많은 작품을 기획하고 연출해 왔다. 이번 공연은 창단 20주년을 맞이하여 늘휘무용단의 지난 행적과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무대위에 춤언어로 표현하고 싶었다. 이틀 공연 중 첫날은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우수 레파토리 공연을, 다음날은 신작을 선보이며 늘휘무용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시간을 한공간에서 다채롭게 선보이고자 구상했다.

-신작인<모래그림>은 70분 길이의 장편이었습니다. 어떤 작품이었고 무용수들은 어떻게 훈련했나요?
신작 <모래.그림>은 2015년 작년 베니스 비엔날레 행사에 관객 입장으로 관람하면서 영감을 얻게 되었다. 해외 작가의 작품들에 담겨진 동양적 색채를 발견하고 많이 놀라고 자극을 받았다. 이번 작품은 몇 년 간 작업해온 철학적 사유의 연장선으로 동양적 사상을 깊이 있게 작품에 담아내려고 노력하였다. 작품 <모래.그림>은 음양오행, 삼재론, 만다라의 사상을 움직임에 응축시켜 작게는 늘휘무용단의 지난 행적을, 크게는 우주의 생멸을 담아 상징적으로 풀어냈다. 이번 무대를 위해 무용수들과 4개월간 하루 6-7시간씩은 함께 했던 것 같다. 엘지극장은 무용수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무서운 무대이기 때문에 무용수의 신체와 움직임 훈련에 집중했다. 스트레칭부터 시작하여 2시간가량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동작을 훈련하였고 군무인 듯 하나 무용수 개인의 기량이 보이는 솔로의 느낌을 내어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무용수들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작품에 대한 충분한 소통과 장면마다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중요하게 여겼다. 지난 20년 동안 늘휘무용단을 격려해 주신 많은 분들로 하여금 ‘격조있고 정제된 무용수들’이라는 많은 칭찬이 이어졌다. 안무자에게는 훌륭하게 성장한 무용수들이 그 무엇보다도 가슴 벅찬 일인 것 같다.

-영상의 사용도 그렇고 무대미술을 다채롭게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돋보였습니다. 3장에서의 의상도 특히 디자인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이번 모래그림의 영상은 두 명의 의상디자이너가 참여를 하였는데 기본적인 구상은 내가 작년부터 컨셉을 미리 잡아 발전시킨 의상이었다. 이번 의상의 컨셉은 무엇보다 어느 관객이 보더라도 한국적인 색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고, 무용수의 조각과 같은 몸이 잘 드러나게 함으로써 움직임이 세련되게 보여지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특히 두 달 동안 무용수의 개개인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체크하며 이미지에 맞는 색깔을 선택하는 과정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이러한 노력이 무대에서 빛을 발한 것 같다.

- 늘휘무용단이 추구하는 작품의 색깔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요?
그 동안은 작품을 제작할 경우 다른 예술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표현영역을 확대하여 관객과의 소통을 원할히 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 창단 20년을 맞이한 지금, 앞으로의 늘휘의 행보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적 정서를 갖춘 소재에 미니멀한 표현을 가미해 한국적 모던미를 갖추고자 한다.

- 늘휘무용단이 지난 20년 동안 거둔 성과라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무용단 창단 10주년, 15주년, 20주년 기념공연을 모두 LG아트센터에서 맞이하였다. 이를 통해 공연 티켓판매현황 및 당일 관객을 살펴보면 매번 공연을 관람하러오는 중복된 인물, 즉 일반 매니아층이 형성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 공연같은 경우에도 첫날은 공연 3일전에 티켓이 매진되었다. 나름의 해석을 하자면 그 이유는 일반 관객이 공연을 접하였을 때 편안하면서도 격조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되어지며, 이러한 노력을 통해 무용관객계층을 확대했다는 점을 성과로 들 수 있겠다.

- 선생님의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올해 늘휘무용단이 창단 20주년을 맞이하여 레파토리 및 신작 공연을 진행하였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관객들의 반응이 더욱 좋았던 것 같아서 정말 감사드린다. 이러한 나의 작업을 해외에서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기대한다. 특히 늘휘에서 배출된 제자들이 무용계의 각 분야에서 훌륭하게 성장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