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춤과 사람들』 3월 공연의 인상과 비인상–늘휘무용단
1996년 이화여대 김명숙 교수를 주축으로 창단해 타예술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한국춤을 시도해오던 늘휘무용단이 21년의 시간을 담아 봄신작을 가졌다. 3월 19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봄.나.들.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공연은 촉망받는 젊은 작가들이 푸르고 서글픈 봄날의 순간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했다. 이 공연 역시 공연의 축을 이루는 춤, 그림, 의상, 음악 등 각 분야의 젊은 작가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 나를, 서로를 들여다봄으로서 이 시대의 감성을 교류하는 아트워크 공연이었다. 특히 내 안의 침묵에 집중해 자신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주시해 진정한 자아를 마주하는 찰나를 포착하는 여정이다. 그래서인지 단순한 미적 아름다움보다는 무게감을 갖고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담아냈다. 로비에 마련된 먹으로 그린 무용수들의 움직임도 또다른 볼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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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품은 남선희 안무의 <생생지도(生生之道)>였다. 장삼처럼 길게 늘어뜨린 흰 의상을 입고 정재음악에 맞춰 단아한 모습으로 무대 중앙에 위치한 남선희는 정갈했다. 주제는 매순간이 새로운 이 세상속에서 낯선 나를 마주하며, 내 앞의 나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지, 부단히도 새로운 이 세상 속에서 익숙하고도 뜨거운 나와 마주하는 자신을 표현했다. 그녀가 움직이며 그려내는 동선과 춤사위가 도를 찾기 위한 구도(求道)의 과정을 연상시켰는데, 그래서인지 깨끗하고 고운 선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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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원의 <관(官)>은 “관(官)을 관(觀)”하다라는 것이 주제로, 시대상황에 대한 스스로의 관찰을 담아 작품을 완성했다. 관(官)을 쓰고자 스스로를 채찍질 하고 그러한 상황이 나를 잃게 하는 과정에서 관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나를 찾는 부분이 현재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의 모습을 반영한 듯해서 더욱 집중되는 무대였다. 2층에서는 국악 라이브 연주가, 1층 중앙에는 과거 관직을 상징하는 머리에 쓴 관을 은유적으로 다룬 사각물체가 놓여있다. 주황색 의상을 입은 안무자는 바닥면에 밀작해 누르는 느낌의 움직임으로 시작해 음악의 강약에 따라 완급을 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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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일은 <하얀 그림자>와 마지막 작품 <In 코드> 두 안무작을 내놓았다. <하얀 그림자>는 영겁의 시간 위에 존재의 무게를 실어 그림자를 만들고, 존재로서 존재하는 하얀 그림자는 어둠을 밟고 빛을 쫓아 뒤척인 곳에 남는다. 이와 같은 추상적인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남성 구음에 감정을 실어 그 정취(情趣)를 살렸는데, 솔로로서 본인의 응집된 내면의 에너지를 비교적 자연스럽게 표출했다. <In 코드>는 코드화 된 자신과 0의 불확실한 불안을 피하고자 하지만 결국은 0으로, 본연의 자신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세련된 조명과 미니멀한 움직임, 먹으로 그려진 그림 느낌의 의상 등으로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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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정의 안무 <토르소>는 여성적 이미지가 두드러진 솔로 작품이었다. 베일 속에 감춰진 자신의 신체와 감정들, 치마 겹겹이 흘러나오는 두려움들이 자유롭게 흐를 수 있도록 거리를 좁히고자 했던 안무자는 제목에 맞게 의도적으로 상체의 움직임을 제한한 듯 한국춤 특유의 부드러운 상체 쓰임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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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봄 신작은 늘휘무용단의 기족 작품들이 한국적 아름다움이나 전통에 기반한 춤사위들이 많이 사용되었던 반면에 각각의 개성을 담아 나름의 춤어휘들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조금 더 보강된 무대였다. 시대와 호흡하는 컨템포러리 댄스란 개인적 존재와 사회적 환경이 맞물려 관객과의 소통이라는 측면이 중요시된다고 볼 때 이를 바탕으로 창작춤의 가능성이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더해본다.
장지원(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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